극동방송이 16일 서울 마포구 본사에서 창사 70주년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사장인 김장환(92) 목사는 방송국 인수 당시를 돌아보며 “과거 구원파에 넘어갈 뻔한 방송사를 지켜냈다는 걸 가장 보람있는 일로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문화일보).
재정 구조는 광고가 아니라 후원 쪽에 놓여 있다. 문화일보는 극동방송의 광고 수익이 미미하다고 적으면서, 매월 1만원의 헌금을 하는 ‘전파 선교사’가 약 20만명에 달한다고 전했다. 같은 기사는 이어 월 20억원가량의 후원금이 들어온다고 덧붙였다.
아래에서는 간담회에서 나온 발언과 숫자, 10월 기념행사 일정을 나눠 정리한다. 두 매체가 서로 다르게 적은 대목과, ‘구원파’ 발언이 가리키는 과거가 인용한 기사들로 어디까지 확인되는지도 구분한다.
“구원파로부터 지켜냈다”는 말은 어디를 가리키나
같은 발언을 매일경제는 조금 다르게 옮겼다. “과거 극동방송이 구원파 측으로 넘어가려던 상황에서 미국 선교사의 요청으로 방송을 인수해 지켜낸 것이 가장 보람 있는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라는 문장이다(매일경제).
인수 시점은 문화일보가 적었다. 아세아방송 초대 국장이었던 김 목사가 1977년 미국 선교사의 요청으로 극동방송을 인수한 뒤 49년간 이끌어왔다는 설명이다. 같은 기사는 그가 1977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극동방송 사장에 취임했다고 썼다.
다만 두 기사 모두 ‘구원파 측’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지, 인수가 어떤 절차로 이뤄졌는지는 적지 않았다.
극동방송과 구원파 인맥의 접점을 기록한 자료는 따로 있다. 2014년 뉴스앤조이 보도는 사이비종교피해대책연맹 정동섭 총재의 기고를 인용해, 유병언 씨가 극동방송에서 일했고 미국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부국장에 임명됐으며 장인인 고 권신찬 목사를 1969년 방송부장으로 임명했다고 전했다(뉴스앤조이). 같은 기사는 주요 교단이 권 목사의 이단 사상에 항의했고 1974년 유 씨와 권 목사를 포함해 직원 12명은 극동방송에서 쫓겨난다고 적었다.
이 대목은 조심해서 읽어야 한다. 2014년 기사는 세월호 사고 국면에서 쓰였고 김 목사의 2026년 발언을 인용하지 않는다. 문화일보가 보도한 인수 시점은 1977년이다. 이 글에서 인용한 기사들만으로는 1974년 축출과 1977년 인수, 이번 발언 사이의 관계를 확인할 수 없다 — 여기까지가 편집자의 해석이다.
또 이 기사 말미에는 반론이 붙어 있다. 기쁜소식선교회 측은 “기쁜소식선교회는 구원파가 아니며, 구원파(기독교복음침례회)나 유병언 측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라고 밝혀 왔다고 매체는 적었다. 이 반론은 해당 기사가 현재 구원파는 유병언·박옥수·이요한을 중심으로 세 분파로 나뉜 상태라고 보도한 데 대한 것으로, 이번 간담회 발언을 겨냥한 반론이 아니다.
정리하면 이렇다.
- 확인된 것: 16일 간담회에서 김 목사가 ‘구원파로부터 지켜냈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사실.
- 확인된 것: 1969년과 1974년 극동방송에서 벌어진 인사 관련 기록이 2014년 보도에 남아 있다는 사실.
- 확인되지 않은 것: 두 기록이 같은 사건의 앞뒤인지, 김 목사가 말한 ‘넘어갈 뻔한’ 상황이 언제였는지.
광고가 아니라 후원으로 돌아간다는 설명, 숫자는 어떻게 읽나
김 목사는 “현재 많은 방송이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우리는 빚 지지 않고, 월급 한번 안밀리고 잘 운영하고 있다”며 그 공을 한국 교인들의 도움과 직원들의 헌신으로 돌렸다. 매일경제는 같은 자리에서 “기독교 복음만 전하자는 초심이 지금까지 적중해 빚 없이 잘 운영하고 있다”는 발언을 전했다.
숫자를 볼 때 유의할 점은 세 가지다.
- 약 20만명과 월 20억원가량은 문화일보가 나란히 제시한 값이다. 감사보고서 같은 회계 자료로 확인된 수치인지는 기사에 나오지 않는다.
- 모집 경로는 두 가지로 적혔다. 김 목사가 매주 교회 집회를 다니며 권유하는 방식과, 방송 홍보를 통해 직접 모집하는 방식이다.
- 후원자 수와 후원금 규모가 늘고 있는지 줄고 있는지는 어느 기사에도 없다.
후원 조직의 뿌리도 기사로 확인된다. 뉴스컬처는 극동방송 운영위원회가 1980년 9월 재정적 어려움에 있는 극동방송을 돕기 위해 시작됐다고 전했다(뉴스컬처). 6월 9일 보도된 같은 기사는 창사 70주년 기념 수련회가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 리조트에서 1박 2일간 열렸고, 중앙사를 포함해 전국 13개 지사 운영위원 1,500여 명이 참석해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졌다고 적었다.
다만 두 간담회 보도에는 모집 경로별 규모와 향후 모집 체계가 제시되지 않았다.
TV도 보도도 없는 라디오 고수는 무엇을 뜻하나
문화일보에 따르면 극동방송은 아직 라디오만을 고수하고 보도 기능도 없다. 김 목사는 “다른 지상파에서 하고 있는 걸 우리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면서 앞으로도 순수하게 ‘복음’만 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광현 부사장은 “TV 방송에 대한 요구가 지난 30년 동안 이어졌지만, 교계 내 중복 투자는 하지 않는다는 게 우리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요구를 못 들은 것이 아니라 원칙으로 거절해 왔다는 설명이다.
이번 보도에는 구체적인 AI·플랫폼 대응 방향이 제시되지 않았다. 박 부사장은 지금 당장 AI로 인한 변화는 없지만 앞으로의 대응 등에 대해 올해 말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될 것 같다고 전했다. 같은 기사는 플랫폼 사업자로서의 역할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적었다.
이 대목은 문화일보 기사에만 실렸다. 매일경제 기사에는 TV·AI 관련 언급이 나오지 않는다. 같은 간담회라도 매체가 옮긴 범위가 다르다는 점은 독자가 교차 확인할 때 먼저 염두에 둘 부분이다.
평양 방송국 구상은 어디까지 준비됐다고 말했나
- 전제: 김 목사는 “북한이 개방만 되면 평양에 방송국을 세우고 복음을 전할 것이다”라고 말했다(문화일보).
- 준비 상태: 같은 기사에서 그는 인력과 자금은 준비돼 있으며 북한이 열리기만을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매일경제에는 “언제 문이 열릴지 알 수 없지만 인력과 재정, 마음의 준비를 모두 마치고 기도로 준비하고 있다”는 발언이 실렸다.
- 조직: 매일경제는 북한 개방에 대비해 3~4년 전부터 ‘극동 아카데미’를 출범시키고 탈북민을 포함한 전문 인력을 양성해 왔다는 발언을 전했다. 문화일보는 극동방송이 탈북자 등이 교육받는 극동아카데미를 운영 중이라고 적었다.
이 구상에는 시점이 없다. 실행 조건이 ‘북한 개방’이라는 외부 변수에 걸려 있고, 언제 어떤 방식으로 세우겠다는 계획은 두 기사 모두 담지 않았다.
한미동맹 언급도 나왔지만 표기가 갈린다. 문화일보는 김 목사가 그날 아침 주한 유엔군 사령관 등을 지낸 미군 고위 인사들을 만났다고 말했다고 전했고, 매일경제는 “오늘 아침 주한유엔사령관 3명과 조찬을 함께 했는데”라는 발언을 실었다.
두 기사가 다르게 적은 대목은 무엇인가
아래 항목은 어느 한쪽이 틀렸다는 뜻이 아니라, 같은 간담회를 옮긴 표기가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인용할 때는 어느 기사를 근거로 삼는지 함께 밝히는 편이 안전하다.
| 항목 | 문화일보 | 매일경제 |
|---|---|---|
| 채널 규모 | 현재 15개 채널과 14개 중계소 | 현재 FM 13개, AM 2개의 채널 |
| 첫 전파 | 1956년 12월 23일 인천에서 첫 송출 | 1956년 12월 인천에서 첫 전파 |
| 그날 아침 면담 | 주한 유엔군 사령관 등을 지낸 미군 고위 인사들 | 주한유엔사령관 3명과 조찬 |
| 리셉션 참석 | 별도 규모 언급 없음 | 정관계 교계 인사 700여명 |
채널 수와 첫 송출일 표기는 서로 어긋난다기보다 상세도의 차이로 읽는 편이 자연스럽다 — 이는 편집자의 해석이다.
방송사 성격에 대한 설명도 비슷하되 표현이 다르다. 문화일보는 극동방송을 KBS, CBS에 이은 국내 세 번째 지상파 방송사이자 국내에서 외국어로 해외 청취자들에게 방송한 최초의 방송사로 소개했다. 매일경제는 한반도에서 외국 청취자들을 대상으로 외국어 방송을 송출한 최초의 대외 방송사라고 적었다.
10~12월 기념행사, 지금 확인해 둘 일정은
기념행사는 아직 열리지 않았고 모두 예정이다. 두 보도를 종합한 예정 일정은 다음과 같다.
| 날짜 | 장소 | 내용 | 출처 |
|---|---|---|---|
| 10월 15일 | 부산콘서트홀 | 70주년 대합창제, 국내외 8개 합창단 참여 | 매일경제·문화일보 |
| 10월 16일 |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 기념 리셉션, 정관계 교계 인사 700여명 참석 | 매일경제 |
| 10월 17일 | 한양대 대운동장·노천극장 | ‘홈커밍데이’ | 매일경제 |
| 12월 23일 | 극동방송 아트홀 | 70주년 기념 예배 | 문화일보 |
독자가 실제로 참여를 고려한다면 확인 순서는 이렇다.
- 일반 청취자가 대상으로 적힌 행사는 17일 홈커밍데이다. 매일경제는 청취자와 다문화가정, 외국인 근로자 등 소외이웃을 초청한다고 전했다.
- 신청 방법, 모집 인원, 참가비는 두 기사 모두 적지 않았다. 참여를 원한다면 극동방송의 공식 안내를 따로 확인해야 한다.
- 16일 리셉션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참석해 축사를 전할 예정이며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등이 영상으로 축하 메시지를 보낸다고 매일경제가 전했다. 일반 참석 가능 여부는 기사에 없다.
문화일보 기사에 실린 포스터 설명에는 ‘내달 16일 서울 한양대에서 열리는 극동방송 홈커밍데이 축하음악회’라고 적혀 있다. 매일경제가 전한 17일 한양대 홈커밍데이와 같은 행사인지 별도 프로그램인지는 두 기사가 설명하지 않았다.
덧붙이면 12월 23일 기념 예배일은 문화일보가 적은 첫 송출일과 같은 날짜다. 기사가 그 연관을 설명하지는 않았으니 날짜가 겹친다는 관찰로만 두는 편이 맞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것
- 김 목사가 말한 ‘구원파 측으로 넘어가려던 상황’의 구체적 시기와 경위. 두 간담회 기사 모두 설명하지 않았다.
- 전파 선교사 약 20만명과 월 20억원가량이 어떤 자료로 산출된 값인지, 최근 추이가 어떤지.
- 평양 방송국 구상의 실행 시점과 방식. 발언은 북한 개방을 전제로만 제시됐다.
- 구체적인 AI·플랫폼 대응 방향. 박 부사장은 AI 대응 논의가 올해 말 시작될 것 같다고만 말했다.
- 향후 후원 모집 체계와 경로별 규모. 이번 보도에는 설명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