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대 주미 공사 박정양 일행이 1887년 처음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진이 일어났다"고 외쳤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곳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팰리스 호텔이다. 이보다 앞서 1883년 조선의 공식 외교사절단 보빙사 일행이 처음 묵은 숙소도 이 호텔이었다고 한국일보가 여행 연재 '요즘 여행'에서 소개했다.
호텔은 지금도 영업 중이지만, 조선 사절이 머문 원래 건물은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과 화재 때 소실됐다. 현재 건물은 1909년 재건된 것이라고 한국일보 기사의 네이버 게재본은 전한다. 같은 이름 아래 시기가 다른 두 건물이 있는 셈이어서, 현장에서 무엇이 당시 그대로인지 가려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 글의 해석이다.
이 글은 1875년 건립부터 대지진 뒤 재건, 2013년 그림 매각 철회까지를 시간순으로 정리한다. 기사가 단정한 대목과 '전해진다'로 남긴 대목, 방문 전에 직접 물어야 할 것을 차례로 다룬다.
보빙사가 먼저, 박정양 일행이 그 뒤에 이 호텔에 묵었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당시 조선에서 미국으로 가는 정석 경로는 서부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를 통해 입항하는 것이었다. 미국 땅에 닿은 조선 사절의 첫 숙소가 이 도시에 있었던 배경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이 글의 해석이다.
순서는 이렇다. 1883년 보빙사 일행이 처음 묵은 숙소가 팰리스 호텔이었다. 이어 미 정부가 당대 최고급 호텔이던 이곳을 박정양 공사 일행의 숙소로 내주었고, 1887년 엘리베이터 일화는 이 숙박 때의 일로 전해진다.
두 방문은 성격도 다르다. 보빙사는 조선이 미국에 파견한 공식 외교사절단이고, 박정양은 조선 초대 주미 공사였다. 미 정부가 숙소를 내줬다는 설명은 박 공사 일행에 관한 대목에 나오며, 보빙사의 숙소를 누가 마련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 연도 | 일어난 일 | 기사 속 표현 |
|---|---|---|
| 1875 | 팰리스 호텔 건립 |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호텔 |
| 1883 | 보빙사 일행이 처음 묵음 | 처음 묵은 숙소도 팰리스 호텔 |
| 1887 | 박정양 일행의 첫 엘리베이터 탑승 일화 | 이 호텔 숙박 때 일로 전해진다 |
| 1906 | 대지진·화재로 원 건물 소실 | 건물이 소실 |
| 1909 | 현재 건물로 재건 | 1909년 재건된 건물 |
| 2013 | 소유주의 그림 매각 시도와 철회 | 시민 반대, 시장의 철회 요청 |
연표의 건립·재건과 그림 매각 경과는 한국일보 네이버 게재본에 나온 내용이다.
기사는 보빙사 파견을 "조선인이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은 역사적 사건"이라고 쓰고, 이를 근거로 팰리스 호텔을 '한인이 처음으로 이용한 서방 세계 호텔인 셈'이라고 정리했다(한국일보). '셈이다'는 앞 문장에서 끌어낸 추론 표현이므로, 이 대목은 기사의 정리로 인용하는 편이 정확하다.
'지진이 일어났다'는 장소와 시점이 전해지는 일화로 소개됐다

기사는 "지진이 일어났다!"를 박정양 일행이 1887년 처음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 말로 소개한다. 다만 이 '공포의 엘리베이터' 일화가 팰리스 호텔 숙박 때의 일이라는 점은 "이때 일로 전해진다"고 적었다(한국일보).
일화를 인용할 때 구분할 점은 세 갈래다.
- 기사가 단정형으로 쓴 것: 미 정부가 박 공사 일행에게 팰리스 호텔을 숙소로 내준 일, 1883년 보빙사가 이 호텔에 처음 묵은 일
- 기사가 '전해진다'로 쓴 것: 엘리베이터 일화가 이 호텔 숙박 때의 일이라는 점
- 확인되지 않는 것: 이 말을 처음 기록한 문헌이 무엇인지, 일행 가운데 누가 한 말인지
당시 엘리베이터가 어떤 물건이었는지도 기사에 나온다. 박 공사 일행을 당황하게 했던 엘리베이터는 당시 미국에서도 '떠오르는 방'으로 불리던 최신 기술이었다(한국일보 네이버 게재본). 처음 타 본 사람이 갑작스러운 움직임을 땅의 흔들림으로 느꼈을 법하다는 것은 이 글의 해석이다.
지금 서 있는 건물은 1906년 대지진 뒤 다시 지은 것이다

팰리스 호텔은 1875년 건립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호텔이었다고 한국일보는 전한다. 지상 7층, 건축면적 8,940㎡ 규모였고, 캘리포니아은행 공동창업자 윌리엄 랠스턴이 샌프란시스코를 세계적 대도시로 만들겠다며 세웠다.
'세계 최대'라는 평가의 비교 기준은 기사에 제시되지 않았다. 이 대목은 기사의 설명으로 인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기사에 따르면 원 건물은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및 화재 때 소실됐고, 3년 후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돼 117년째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한국일보). 사진 설명도 현재 건물을 1909년 재건된 건물로 적었다.
그래서 독자가 구분할 시기는 둘이다.
- 1875년 건립부터 1906년 소실까지: 보빙사와 박정양 일행이 묵은 원 건물의 시기
- 1909년 재건 이후: 지금 영업 중인 건물의 시기
기사는 지금의 호텔이 박 공사와 보빙사 일행이 묵었던 원 건물은 아니라고 분명히 했다. 재건 건물이 원래 건물과 같은 자리에 섰는지, 원 건물의 흔적이 남아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마차가 드나들던 정원은 유리 천장 아래 실내 공간이 됐다
원 건물의 상징은 그랜드 코트였다. 마차가 손님을 태우고 내리는 중앙정원으로, 외형과 채광이 아름다워 당시에도 유명했다고 한국일보는 전한다. 지금은 호텔 역사 박물관 벽면에 옛 그랜드 코트 사진이 전시돼 있다.
재건 때 이 공간은 '가든 코트'로 바뀌었다. 기사는 재건 당시가 미국 주류 교통수단이 마차에서 자동차로 넘어가던 시기였다고 설명하며, 마차가 오가던 중앙정원이 연회장 등으로 쓸 수 있는 실내 공간이 됐다고 적었다. 교통수단 변화와 공간 변화를 잇는 것은 기사의 설명이다.
| 항목 | 그랜드 코트(원 건물) | 가든 코트(재건 건물) |
|---|---|---|
| 쓰임 | 마차가 손님을 태우고 내리던 중앙정원 | 연회장 등 실내 공간, 평소 조식 등을 내는 식당 |
| 기사가 꼽은 특징 | 외형과 채광 | 색유리 조각 천장, 샹들리에 10개 |
|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것 | 역사 박물관 벽면의 옛 사진 | 공간 그 자체 |
가든 코트는 7만 장이 넘는 색유리 조각을 이어 붙인 천장과 10개의 샹들리에 덕분에 밤낮 없이 빛이 아름답다고 한국일보는 소개했다. 샹들리에는 오스트리아 빈산이며, 보험 금액이 개당 100만 달러에 달한다고 기사는 전했다.
보험 금액은 기사가 '달한다고'라는 전언 형식으로 적은 값이다. 누가 밝힌 수치인지는 확인되지 않으므로 감정가나 판매가로 바꿔 읽지 않는 편이 맞다.
가든 코트는 평소 조식 서비스 등을 이용할 수 있는 식당으로 쓰인다. 그랜드 코트의 후신을 여행자가 식사 자리로 경험할 수 있다는 뜻이라는 것이 이 글의 해석이다.
2013년 그림 매각은 시민 반대 끝에 취소됐다
기사는 호텔 곳곳의 일화도 소개한다(한국일보). 장소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프렌치 팔러: 가든 코트를 내려다보는 2층 공간이다. 남성들이 식후 시가와 브랜디를 즐기러 가면 여성들이 모여 코르셋을 풀고 쉬던 곳으로, 현재는 소규모 미팅 및 결혼식장으로 대여할 수 있다.
- 파이드 파이퍼 바: 실내에 걸린 맥스필드 패리시의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그림에서 이름을 따왔다.
- 복도와 객실: 파스텔 톤 푸른빛으로 칠해져 있다.
2013년 호텔 소유주가 이 그림을 매각하려 하자 시민들이 반대했고 시장이 나서 매각 철회를 요청했다. 결국 소유주는 경매 출품을 취소하고 그림을 바에 계속 전시했다고 한국일보는 전했다.
기사는 이 일을 팰리스 호텔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지닌 역사적 중요성과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일화로 평가했다. 소유주가 어떤 판단으로 출품을 취소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같은 기사 안의 두 일화가 서로 다른 독자를 향한다는 것이 이 글의 해석이다. 조선 사절 이야기는 한국 여행자에게 이 호텔을 찾을 이유가 되고, 그림 논란은 샌프란시스코 시민에게 이 호텔이 갖는 무게를 보여 준다.
방문 전에는 공간별 운영 시간과 이용 조건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
기사는 공간별 현재 용도를 알려 주지만 운영 시간이나 요금은 적지 않았다. 아래 표의 오른쪽 칸은 방문 전 호텔에 직접 확인할 항목이다.
| 공간 | 기사에 나온 현재 모습 | 방문 전 확인할 점 |
|---|---|---|
| 가든 코트 | 평소 조식 서비스 등을 이용할 수 있는 식당 | 운영 시간, 투숙객이 아닌 사람의 이용 가능 여부 |
| 프렌치 팔러 | 소규모 미팅·결혼식장으로 대여 가능 | 대여 조건과 비용 |
| 파이드 파이퍼 바 | '피리 부는 사나이' 그림이 걸린 바 | 운영 시간 |
| 역사 박물관 | 옛 그랜드 코트 사진 전시 | 관람 가능 범위와 시간 |
조선 사절의 발자취를 따라가려는 여행자라면 이런 순서로 준비하면 된다.
- 목적을 정한다. 숙박인지, 가든 코트 식사나 바 방문인지에 따라 확인할 항목이 달라진다.
- 호텔에 운영 시간과 이용 조건을 직접 문의한다.
- 현장에서는 지금의 건물이 1909년 재건된 건물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
- 옛 모습은 역사 박물관 벽면의 그랜드 코트 사진 같은 전시물로 확인한다.
- 동행에게 설명할 때는 1883년 보빙사와 1887년 박정양 일행을 나눠 말하고, 엘리베이터 일화는 전해지는 이야기로 소개한다.
보빙사가 며칠, 어느 방에 묵었는지는 아직 나오지 않는다
이번 기사로 답할 수 없는 질문도 분명하다. 후속 보도나 사료로 확인할 항목은 다음과 같다.
- 보빙사와 박정양 일행이 팰리스 호텔에 머문 기간과 객실
- '지진이 일어났다'는 말을 처음 기록한 문헌과 발언자
- 재건 건물이 원 건물과 같은 자리인지, 원 건물의 흔적이 남아 있는지
- 샹들리에 보험 금액을 누가 밝혔는지
- 가든 코트·바·박물관의 운영 시간과 이용 조건, 숙박 요금
실제 지진 때의 행동은 방문할 호텔의 최신 안전 안내로 확인할 항목이다. 국내 안내 페이지도 문서 속 시점을 살펴야 한다. 김해시 지진 안내에는 진도 등급에 관해 "2001년부터 미국 등 세계 여러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는 MM진도 1~12까지 12등급을 사용할 예정이다"라는 문구가 남아 있다.
이 과거 시점의 미래형 표현을 오늘의 예정 사항이나 현행 기준으로 읽을 수 없다는 것이 이 글의 해석이다. 여행 일화와 함께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오래된 안내를 현재의 행동요령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기사에 따르면 팰리스 호텔은 현재도 성업 중이다. 운영 시간이나 요금처럼 바뀔 수 있는 정보는 방문 직전 호텔에 확인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참고 자료
- [한국일보 · 엘리베이터 타고 "지진 났다", 미국 간 최초의 조선인이 묵은 이 호텔 [요즘 여행]](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102014360003351) · 같은 기사의 네이버 뉴스 게재본
- 김해시 · 지진 | 김해분야포털












